제7회 박상륭상 심사경위
수상작 없음
2024년 11월 20일까지 접수된 원고는 시 141, 소설 82(장편 20), 희곡 23명 등 총246명이었다. 시와 소설을 동시에 응모한 분도 여럿 있었다. 지난해 희곡 수상작이 나와서인지 희곡도 예년보다 응모작이 많았다. 그러다가 예심에 착수하기도 전, 정확히 마감 2주 만에 12.3 내란 사태가 발생했다. 시대의 역행 속도가 무지무지한 굉음으로 울리며 남한 전체가 들썩였다. 이런 시대에 문학은 뭘 할 수 있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또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은 특정 개인 차원의 몫이 아니라는 생각을 누구나 했을 거라 여긴다.
심사를 하면서 그런 점을 직접적으로 논의한 건 아니다. 그래도 모두의 마음 한켠에 무거운 짐이거나, 새로운 각성이거나, 모종의 굴레 같은 게 작용했을 수는 있다고 고백해야겠다.
작품의 전체적인 수준은 나쁘지 않았다. 특정한 시류나 성향을 부러 의식하진 않았으나 작금의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에 대략적인 얼개 같은 건 어떤 심사 과정에서도 그려지기 마련, 관건은 역시 내용과 형식 불문, 누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세계와 교호하는지를 파악하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문학적인 성향이나 취향은 되레 부수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요컨대 잘 쓰고 못 쓰고, 뛰어나고 처지고의 문제를 떠나 글 쓰는 자로서의 명확한 자의식과 세계관이 텍스트에 어떤 식으로 생명력 있게 발현하고 있는지를 우선 살펴야 하는 법인 거다.
그런 전제를 두고 봤을 때 이번 심사는 특정 장르, 더 들어가 특정 작품에 대한 세세한 평가를 논하기 전에, 과연 어떤 이가 무슨 형식과 내용으로 세상과 맞서거나 혹은 싸우거나 혹은 침윤하여 암중모색하고 있는지에 대한 동태 파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는 전체적으로 정교한 기교적 훈련과 동시대적 시의 흐름을 무난하게 타고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외려 눈에 띄는 작품이 없었고, 혹여 눈에 띄더라도 특별한 개성이나 발성법을 만나기 힘들었다. 비슷한 수준의 밴드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별 차별성 없는 사운드를 관성적으로 연주하고 있는 록 페스티벌을 보는 기분이랄까. 대개 다 나쁘지 않았으나 대개 다 자기만의 편협한 굴레 안에서 부질없는 기술만 연마하는 것 같았다. 그 반대급부에서 마지막으로 논의된 작품은 <세슘 여자의 서 외>였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자신만의 체험을 공동체의 신화로 재구축하려는 시도가 일단 가치 있다고 여겼다. 별다른 시적 기교도 없이 직선적, 그리고 단정적으로 자신과 세계를 둘러싼 문제들과 힘껏 드잡이하는 점도 좋았다. 미세세공술로 가득한 한국 시단에 ‘도끼를 든 여인’(?)이 나타난 것 같아 반가웠으나 문제는 바로 그 ‘도끼’였다. 시원시원하고 명쾌하고 파워풀하나 그게 잘못 쓰였다간 엄한 사람 잡을지도 모를 거라는 판단 또한 기대감 못지않았다. 자칫 도그마로 굳어 스스로 합리화에 빠질 위험성도 없지 않아 보였다. ‘최승자+고정희’의 합체 재림일 수 있다는 누군가의 반색은 묵살되었다. 아쉽지만, 내려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장편 <암총暗銃>은 시작부터 문제적이었다. 엄청나게 세공되고 단단한 묘사로 무장한 문장이 서두부터 압권이었다. 분량도 원고매수 2.000매를 족히 넘길 만큼 압도적이었다. 웰메이드 웨스턴 영화를 연상케 하는 소재 또한 낯설고 반가웠다. 한 눈먼 총잡이와 그를 따라 다니는 소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데, 초반까지는 문장의 오밀조밀하고도 웅혼한 기운에 사로잡혀 지리할 틈 없었다. 그러나 페이지를 넘길수록 그 무수한 묘사와 사설들이 굳이 필요했을까 싶어지면서 점점 눈이 멀어져 갔다. 플롯과 서사의 엉성함 또한 지울 수 없는 단점이었다. 질 좋은 재료와 세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어졌으나 결과적으론 모양도 쓰임새도 난감한 거대 건축물을 보는 것 같았다. 단순한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고 지루하게 늘여서 스스로 분열하게 만들었을까 싶은 아쉬움이 컸다. 결국 내려 놓았다.
희곡은 응모작 수에 비해 볼 만한 작품이 없었다. 무대의 조형미도, 언어의 질박함도, 발상 및 전개의 수준도 급조된 드라마 수준 이상 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끝까지 언급된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
무슨 일이든 쉬어 갈 때가 있는 법이다, 라는 자성과 함께 올해 박상륭상 수상자는 공란으로 남긴다. 모든 분께 감사하고 사과드린다.
박상륭상 운영회의
강정 김진석 김진수 배수아 한유주 함성호 (감사:동명)